<OSMU & 스토리텔링>(김종회...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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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민기 댓글 0건 조회 22,068회 작성일 12-05-22 19:32본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징후, 스토리텔링......그리고 '디카시'
'OSMU'란 'One Source Multi Use'의 줄임말이다. 말뜻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근원적 이야기가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문화, 혹은 그런 현상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인쇄 매체의 이야기만 주로 소비하던 근대 시민 계층이 다른 매체를 넘나들며 변화하는 이야기들을 즐기고 있다. 이제 문학은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만화 등의 장르와 뒤섞이며, 그 됨됨이를 다양하게 드러내 보이는 시대를 만났다.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올리는 작가들은 있어왔고, 그 이야기 전통의 바탕 위에서 문학은 이제 모든 이야기 매체들에 영감과 소재와 주제를 줄 수 있는 가장 근원적 샘터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문학은 위기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다.
좋은 문학은 많은 장르에 옮겨진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국민소설로 불리는 이 작품은 그동안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심지어 테마파크로까지 그 터무니를 넓혀 놓고 있다.
이처럼 문학은 영상 매체의 가장 뚜렷하고도 중요한 스크립트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책은 황순원의 <소나기>가 어떻게 인접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여러 본보기를 통해 드러내 보인다.
● 'OSMU'로서의 디카시
문화콘텐츠 관련 학계에서는 요즈음을 일컬어 'OSMU' 계발의 시대로 이름짓고 있다. 그만큼 스토리 텔링의 쓰임새가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스토리 텔링은 '서사' 중심으로 그 터무니를 넓혀오고 있다. 내다보건대, 머지 않아 이것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그 촉수를 뻗어 올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온몸으로 밀고 가는 이 '디카시' 운동은 지금까지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스토리 텔링을 '서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선행적 운동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과거 한 때의 '구체시 운동'이나, 최근의 '포토포엠'과 뚜렷하게 나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디카시는, 이미 만들어진 문화담지체를 시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수동적 문화운동이 아니라, 디카시를 하나의 OSMU로 하여 우리 삶의 모든 영역으로 그 터무니를 펼쳐나가는 적극적 문화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OSMU'란 'One Source Multi Use'의 줄임말이다. 말뜻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근원적 이야기가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문화, 혹은 그런 현상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인쇄 매체의 이야기만 주로 소비하던 근대 시민 계층이 다른 매체를 넘나들며 변화하는 이야기들을 즐기고 있다. 이제 문학은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만화 등의 장르와 뒤섞이며, 그 됨됨이를 다양하게 드러내 보이는 시대를 만났다.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올리는 작가들은 있어왔고, 그 이야기 전통의 바탕 위에서 문학은 이제 모든 이야기 매체들에 영감과 소재와 주제를 줄 수 있는 가장 근원적 샘터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문학은 위기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다.
좋은 문학은 많은 장르에 옮겨진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국민소설로 불리는 이 작품은 그동안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심지어 테마파크로까지 그 터무니를 넓혀 놓고 있다.
이처럼 문학은 영상 매체의 가장 뚜렷하고도 중요한 스크립트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책은 황순원의 <소나기>가 어떻게 인접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여러 본보기를 통해 드러내 보인다.
● 'OSMU'로서의 디카시
문화콘텐츠 관련 학계에서는 요즈음을 일컬어 'OSMU' 계발의 시대로 이름짓고 있다. 그만큼 스토리 텔링의 쓰임새가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스토리 텔링은 '서사' 중심으로 그 터무니를 넓혀오고 있다. 내다보건대, 머지 않아 이것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그 촉수를 뻗어 올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온몸으로 밀고 가는 이 '디카시' 운동은 지금까지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스토리 텔링을 '서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선행적 운동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과거 한 때의 '구체시 운동'이나, 최근의 '포토포엠'과 뚜렷하게 나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디카시는, 이미 만들어진 문화담지체를 시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수동적 문화운동이 아니라, 디카시를 하나의 OSMU로 하여 우리 삶의 모든 영역으로 그 터무니를 펼쳐나가는 적극적 문화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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