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지팡이는 자꾸만 아버지를 껴입어」
디카시집 「그늘이 자라는 시간」
[시인·문학평론가 권영옥의 기별(奇別)] 이혜민 시인이 시집『지팡이는 자꾸만 아버지를 껴입어』(푸른사상 시선)와 디카시집 『그늘이 자라는 시간』(작가)을 동시에 출간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는 시인의 삶을 반영한다. 시인의 삶이 곧 시이며, 그 시는 다시 삶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시인에게 작품과 삶의 일체감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작품 속 화자와 시인의 삶은 독립되어 있으나, 그 근본이 하나라는 사실을 간과하기도 한다.
이혜민 시인은 삶의 거센 파도를 마주할 때마다 몸소 맞서는 ‘날것의 서퍼’가 된다. 고통스러운 원체험을 정화해 작품 속 화자는 타자들에게 정감을 품거나 윤리적 책임을 다한다. 독자들은 이러한 시편을 통해 시인의 실존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삶을 공감하게 된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조적·체념적 어조가 아닌 의지적이고 단호한 남성적 어조를 보인다. 동시에 대극점에서는 부드럽고 따뜻한 여성적 어조를 드러낸다. 두 어조 모두 공통으로 청자를 향하고 있다. 이 지향은 시인이 누군가를 향해 사랑을 갈망하고 있으며, 또한 주변부 타자들에게 윤리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의지의 표명이다.

권영옥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이번 시집의 핵심을 ‘다수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으로 규정한다. 화자가 자신의 고통보다 먼저 바라보는 것은 타자의 고통이다. 화자는 죽은 부모를 현실로 불러오고, 불평등한 남성 중심 사회를 향해 전복의 욕망을 드러내며, 고용 문제로 고통받는 노동자에게는 연대의 응원을 보낸다. 그는 이를 “개인의 사랑을 넘어 다수 타자를 책임지는 윤리적 수행”이라고 평했다.

이혜민 시인은 디카시집 『그늘이 자라는 시간』의 자서에서 “마음으로 찍고 카메라로 써 내려간 삶이 시고, 시가 삶인, 그날이 그날인 일상 풍경 뒤의 풍경을 부끄러운 일기장처럼 내보인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시인은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는 있지만 직접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다. 그 본보기가 디카시집이고, 요즘 구상하고 있는 캘리그래프 시집이다. 그녀는 어떤 일에서도 움츠리지 않고 주저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대범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처를 잘 받는 여린 마음도 있다.
나를 수선할 때마다
핏방울처럼 떨어져 번지는 눈물
무명의 노루발 박음질하는 난
한 폭의 생을 깁는다
-「나를 깁다」 전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인은 고통의 무늬를 수선하고 박음질한다. 눈물이 핏방울처럼 번지는 과정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결국 그는 ‘한 폭의 생’을 깁는 주체로서 세계 속 쓸모를 위해 자신을 다시 열어 보인다.
이상옥 창신대 명예교수는 표4 글에서 “보잘것없고 외로운 것들에서 고통의 실체를 응시하며 삶의 무늬를 직조하고 존재의 윤리까지 되묻는다.”라고 평했다. 최광임 디카시 주간은 해설에서 “슬픈 시 의식은 단순히 삶을 대비하는 차원이 아니라, 실제 인내와 감내의 시간이 축적되며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민 시인은 여주에서 태어나 2005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 『토마토가 치마끈을 풀었다』, 『나를 깁다』, 『지팡이는 자꾸만 아버지를 껴입어』, 전자책: 『봄봄클럽』, 디카시집: 『그늘이 자라는 시간』이 있다. 2006년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 2008년 성남시 문화발전 기금 수혜, 2025년 강원문화재단, 횡성문화관광재단 전문예술지원 공모에 선정되었다.
[글, 사진=권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