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詩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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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898회 작성일 12-03-23 18:17본문
책소개
무크지 [디카시 마니아] 발행인의 평론집, 『디카시를 말한다』. 디지털카메라, 즉 디카를 활용한 글쓰기는 누리꾼을 중심으로 일상화되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디카가 새로운 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 책은 디카를 활용한 글쓰기 중 디카시에 대해 논의한다. 제1부에서는 그동안 진행되어온 디카시를 시간적인 순서대로 배치하여 디카시의 정립, 발전, 진화 등을 엿볼 수 있다. 제2부에서는 디카시에 대한 대담을 통해 디카시의 미래에 대해 모색한다. 디카시를 둘러싼 쟁점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책머리에
제1부 디카詩를 위한 시론(試論)
디카詩, 언어 너머의 詩
디카詩의 가능성과 창작방법
디카詩의 쟁점과 정체성
디카詩, 21세기 디지털 시대 새로운 시의 한 모형
디카詩의 실험과 모색
디카詩, 공감과 매혹
디카詩의 비전
시의 굴절된 풍경과 디카詩
디카詩의 새로운 경지, 오늘의 패러다임 제시
제2부 디카詩 모색을 위한 대담
디카詩의 대중성
디지털 시대와 디카詩
디카詩의 전위성
부록 - 디카詩를 바라보는 시선
무사상시 이야기 / 문덕수
'극순간의 포착', '극순간의 감동' / 배한봉
직관이 불러온 詩를 받아쓰다 / 박서영
줄거리
우리 시단의 왜곡된 섹터주의는 참으로 큰 문제다. 허명만 높은 자칭 엘리트 시인이 있는가 하면, 무명이지만 따스한 가슴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는데, 차라리 후자가 더 우리 시단에서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한다. ... 전위적 포즈나 시대의 주된 단론을 생산하지는 못하지만 진솔한 서정으로 독자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이 땅의 숨어 있는 무명 시인들이 아닌가 한다.
물론, 앞의 신문 지적처럼 아마추어리즘의 팽배도 문제이긴 하지만 따스한 가슴을 지닌 무명 시인들마저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대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못하면서 오히려 허명에만 사로잡힌 채 시단의 권력만 향유하려고 드는 자폐적인 자칭 엘리트 시인들보다는 스스로 시단의 민초라고 여기는 가슴이 따스한 무명 시인들이 더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 20세기 아날로그 방식의 시쓰기로 일관해서는 디지털 시대 우리 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지금의 독자들은 디지털 시대의 멀티 독자들이다. 언제까지 종이편지를 쓰던 독자로 인식하고 시를 쓸 것인가? 디지털 시대에 맞게 새로운 시의 몸 바꾸기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영상을 시의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아닌가 한다. 내가 근자에 시도하고 있는 디카詩는 일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디카詩의 모색은 내가 주창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은 결코 개인의 창조라기보다는 디지털 시대가 빚어낸 것이다.
- 본문 91~93쪽, '시의 굴절된 풍경과 디카詩' 중에서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이 책은 디카를 활용한 글쓰기 중 디카시에 대해 논의한다. 제1부에서는 그동안 진행되어온 디카시를 시간적인 순서대로 배치하여 디카시의 정립, 발전, 진화 등을 엿볼 수 있다. 제2부에서는 디카시에 대한 대담을 통해 디카시의 미래에 대해 모색한다. 디카시를 둘러싼 쟁점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책머리에
제1부 디카詩를 위한 시론(試論)
디카詩, 언어 너머의 詩
디카詩의 가능성과 창작방법
디카詩의 쟁점과 정체성
디카詩, 21세기 디지털 시대 새로운 시의 한 모형
디카詩의 실험과 모색
디카詩, 공감과 매혹
디카詩의 비전
시의 굴절된 풍경과 디카詩
디카詩의 새로운 경지, 오늘의 패러다임 제시
제2부 디카詩 모색을 위한 대담
디카詩의 대중성
디지털 시대와 디카詩
디카詩의 전위성
부록 - 디카詩를 바라보는 시선
무사상시 이야기 / 문덕수
'극순간의 포착', '극순간의 감동' / 배한봉
직관이 불러온 詩를 받아쓰다 / 박서영
줄거리
우리 시단의 왜곡된 섹터주의는 참으로 큰 문제다. 허명만 높은 자칭 엘리트 시인이 있는가 하면, 무명이지만 따스한 가슴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는데, 차라리 후자가 더 우리 시단에서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한다. ... 전위적 포즈나 시대의 주된 단론을 생산하지는 못하지만 진솔한 서정으로 독자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이 땅의 숨어 있는 무명 시인들이 아닌가 한다.
물론, 앞의 신문 지적처럼 아마추어리즘의 팽배도 문제이긴 하지만 따스한 가슴을 지닌 무명 시인들마저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대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못하면서 오히려 허명에만 사로잡힌 채 시단의 권력만 향유하려고 드는 자폐적인 자칭 엘리트 시인들보다는 스스로 시단의 민초라고 여기는 가슴이 따스한 무명 시인들이 더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 20세기 아날로그 방식의 시쓰기로 일관해서는 디지털 시대 우리 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지금의 독자들은 디지털 시대의 멀티 독자들이다. 언제까지 종이편지를 쓰던 독자로 인식하고 시를 쓸 것인가? 디지털 시대에 맞게 새로운 시의 몸 바꾸기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영상을 시의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아닌가 한다. 내가 근자에 시도하고 있는 디카詩는 일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디카詩의 모색은 내가 주창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은 결코 개인의 창조라기보다는 디지털 시대가 빚어낸 것이다.
- 본문 91~93쪽, '시의 굴절된 풍경과 디카詩' 중에서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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