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의 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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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ake5 댓글 1건 조회 38,661회 작성일 12-06-20 11:18본문
Minimalism
꼬마가 빨던 막대사탕이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주위로 몰려든 개미 떼
―개미 떼(백주희)
금으로 씌운 이 한 개
검게 썩은 이 한 개
하루에 세 번 양치질
―양치질(백주희)
지붕 밑에 거미줄이
쳐졌다, 싸리비로 털었다
다음 날 다시 쳐진 거미줄
―거미줄(백주희)
교도소 좁은 창문
틈새로 쏟아지는 햇살에
나방이 파닥이다
―나방(전은경)
까마귀 한 마리
빙빙 허공을 날다
십자가 위에 앉다
―까마귀(전은경)
사랑니를 뽑았다
그 자리는 계속 피가 났고
커다란 구멍만이 남았다
―사랑니(김선아)
버려진 참치 캔
그 속의 청개구리
강물을 바라본다
―청개구리(최수희)
시커먼 구정물 옆
환하게 피었구나
유채꽃 한 아름
―유채꽃(우은지)
빗방울 떨어진다
모여드는 동그라미
잠 깬 개구리의 눈
―봄비(우은지)
연어 떼 상류로
펄쩍 뛰어 올랐다
닿지 않는 콘크리트 벽
―연어 떼(우은지)
텃밭에 나가서
무를 뽑으려는데
구멍들만 가득
―무 도둑(김소진)
"경작하지 마시오."
팻말 뒤에 자라는
속이 꽉찬 배추들
―배추(김소진)
수업이 끝나고
비어있는 강의실에는
종이컵만 나뒹군다.
―강의실(김소진)
인적 없는 밤 골목
깨진 콘크리트 계단 아래
새앙쥐 입에 문 도둑고양이
―도둑고양이(김광화)
미니멀리즘의 시는 형태가 짧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표현의 간결성, 주제의 간결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표면상 실제적으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심층에 이중의 복사가 일어난 것과 같은 표현의 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메타포와 같은 인위적 수사학(A. J. Greimas는 이것을 정신분열현상으로 봄)을 표층에 동원하지 않고 이것을 심층에 배치한다는 것이지요.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 같기도 하고, 기교를 중요시 하는 분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도무지 시답지 않게도 보이겠지요.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복합 동류체(complex isotopy), 즉, 심층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기교의 기교라고 할까? 어떻게 보면 위장이지요. Warren Motte의 “Small Worlds-Minimalism in Contemporary French Literature”와
Cynthia Whitney Hallet의 "Parallel Poetics"를 참조하고, 근본적으로는 기호학(A. J. Greimas의 Semiotics)을 참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http://www.poemspace.net/ 참조.
또 다른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시
소극시(素劇詩), Poetry of the dramaticule
바퀴 위에서
해설; 새로운 장시의 가능성(송재영,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
댓글목록
차민기님의 댓글
차민기 작성일디카시에서 시행이 짧은 것은, 일본의 '하이쿠'나 이 글에서의 짧은 시처럼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외물로부터 촉발되는 감흥이 찰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카시에서의 '날시' 개념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외물을 대하는 순간, 섬광처럼 가슴 아래께를 훑고 지나는 그 찰나적 감흥을 기록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디카시는 그 외물의 이미지와 문자시가 하나로 융합되어 온전한 정서적 의미를 생성해 냅니다. 디카시에서 이미지를 빼고 문자로만 나타내면 정서적 감흥이 감소되는 까닭이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옮기신 짧은 시들의 경우, 굳이 이미지가 제시되지 않아도 전해지는 시적 정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는 형식만을 짧게 한다고 새로울 수는 없습니다. 형식과 내용이 하나의 의미로 귀결되는 갈래가 시인 까닭입니다. 여기에 옮긴 짧은 시들은 단지 외부 풍경의 한 단면을 삽화처럼 제시하고 있을 뿐이지요. 시가 짧아지면 그만큼 내적 긴장감은 조밀해져야 합니다. 천천히 이 울 안을 다니시면서 앞으로 오르게 될 좋은 디카시들을 꼭,꼭 , 씹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