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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머물고 있는 이 땅의 고독한 한때 기다림에 대하여'에 부치는 후렴 / 박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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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영 댓글 0건 조회 2,004회 작성일 15-05-2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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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머물고 있는 이 땅의 고독한 한때 기다림에 대하여'에 부치는 후렴
        -임동확 신작 디카시 /
  박서영(시인)

 

 

  임동확 시인의 작품은 『매장시편』을 통해 처음 접했다. 어딘가에 꽂혀있을 오래된 시집은 찾으면 없고, 잊고 있으면 어느 날 문득 눈에 밟히곤 한다. 민음사 시집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시인의 시집을 찾았다. 내가 스무 살 무렵 나온 시집이니 꽤 오래 품고 다닌 셈이다. 어둡고 아픈 광주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깊고도 음울한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아마도 나는 시집제목에 먼저 끌렸을 것이다. 시인이 보내온 디카시 해설을 준비하면서 제목을 그의 시 「그대가 머물고 있는 이 땅의 고독한 한때 기다림에 대하여」를 빌렸다. 생활인으로 살아가면서 누구나 기다림과 그리움을 앓는다. 그 기다림은 모두 한때의 고독이 불러온 것이다. 순간들이 모여 빛나는 그리움이 되고 긴 기다림이 된다.
  디카시의 특징이 생활에서 순간적으로 길어 올린 성찰, 혹은 인식이 날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사유훈련이 된 시인의 경우 순간적으로 단 몇 행만으로도 충분히 시를 완성할 수 있다. 사진을 찍는 동시에, 이미지를 본 그 순간 다키시는 탄생한다. 임동확 시인은 짧은 시행 속에 강렬한 인식을 심어놓고 있다. 생활을 둘러싼 내적, 외적 환경을 통해 통찰을 이끌어내고 있다. 생의 비의를 뚫고 단 몇 마디만으로도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하고 마는 시. 디카시의 매력은 그런 지점에서 찾을 수도 있으리라.
 

 

 

 

 


 홀로 감당해야 할 그 거리만큼 먼 너와 나 사이
 오직 순수한 기억처럼 길게 뻗어난 물풀 하나 
                                  -「그리움」 전문


  
  이 시에서 읽혀지는 건 ‘고독’이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멀고 혼자 감당해야 할 고독과 그리움이 있다. 이때 “길게 뻗어난 물풀 하나”가 그리움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물풀을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이다.  시인의 다른 시 「풍력발전기」에는 더욱 직접적으로 날것의 감정이 표현되어 있다. “이제 날 움직이는 건 /보아도 보이지 않는/저 세찬 밀물 같은 고독,/만져도 만져지지 않은/저 거센 바람 같은 그리움뿐”에서 알 수 있듯 시인은 생활의 고독을 통해 그리움을 길어올리고 있다. 이 시에 사용된 사진이미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풍력발전기 세 대가 서 있고 그 사이를 갈매기 한 마리가 날개를 펼쳐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바다라는 ‘밀물’과 풍력발전기의 원리인 ‘바람’을 길어 올렸다. 그래서 자연스레 고독을 통해 그리움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갈매기는 고독과 고독 사이를 가로질러 날아가며 살아야 하는 시인일 수도 있겠다. 발전기의 배경이 되는 “섬” 역시 고독과 고독과 무관하지 않다. 날아가면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밑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고독이다. 그리고 그리움은 어떤 실체를 가지지 않은 채 우리를 어딘가로 향하게 한다. 사진 속의 갈매기처럼.
  시인의 다른 시 「신발」에 나타난 ‘기다림’은 다정하고도 살가운 느낌이 든다. 스스로 바닥에 엎드려 바닥이 된 ‘신발’은 “먼 길 떠나는 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급기야는 “바닥잠 청하는 털신 한 켤레”의 고단한 운명이 “행자”의 삶과 일치된 모습을 보여준다. 소통의 기척들 같다. 그 작고 힘없는 기척들에서 고독을 견디고 기다리고 그리움을 앓고 있는 게 우리들이다. 그리움은 생각보다 깊다. 깊어진 것들은, 바닥을 치고 올라온 것들은 담백하고도 맑게 우리의 가슴을 적셔준다.

 


         
        


아가, 밥은 제때 먹고 다니니? 잠자린 또 어떻고?
이 어민 국수 한 그릇 정화수처럼 앞에 두고
너희 안부를 물으며 주책없이 목이 메는구나  
                                -「안부」 전문

 


  잘 지내요? 그리움은 궁금함을 낳고 안부를 묻게 한다. 시 속의 사진이미지는 식탁 위의 소박한 국수와 핸드폰이다. 어찌된 일인지 시 속의 어머니는 그리운 이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독백을 하고 있다. “너희 안부를 물으며 주책없이 목이 메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다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이런 정황을 통해 그리움의 원천을 짐작하게 된다.
  고독과 기다림, 그리움은 뭔가를 상실한 후에 오는 게 보편적이다. 그것은 새로운 열망을 꿈꾸게 한다. 생활인으로 젖어 살면서 문득 돌아보게 되는 곳에 시인이 열망하는 “혁명”이 있다. “아무런 부끄럼도, 한 점 후회도 없이/ 캐캐묵은 슬픔의 속옷가지 빨래들을/ 골목에 내다 널어 말리고 뒤집으며/다시 혁명을 꿈꾸고픈 날들이 있다”(「생활」)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은 생활인의 고독과 열망이다. 무심코 속옷들을 집안이 아닌 골목에 내다 말리며 깨닫게 되는 부끄러움. 시인은 청춘도 혁명도 다 떠나버린 곳에 부끄러움도 모르는 채 골목에 널어 말리는 우리의 생활이 있음을 깨닫는다. 영혼의 궁핍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젊은 날 혁명을 꿈꾸고 광장으로 나갔던 싱싱한 서러움은 이제 “캐캐묵은 슬픔”이 되어 골목을 떠돌 뿐이다. 영혼이 가난해져 버린 것이다. “그대가 머물고 있는 이 땅의 고독한 한때 기다림에 대하여”에서 시인은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다시 혁명을 꿈꾸고 싶은 열망, 그것은 한때 시인의 몸을 훑고 지나간 섬광이다. 생활인이기도 한 시인은 그 섬광 같은 것들을 기다리고 있다. 섬광 같이 우리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시. 임동확 시인의 디카시들을 읽으며 우리가 진정으로 거주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가만히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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