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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론(詩論)으로 풀어 본 '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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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민기 댓글 0건 조회 21,582회 작성일 12-11-1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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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론(詩論)으로 풀어 본 ‘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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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민 기

 


1. 근원적 ‘감흥(感興)’과 시의 정신

200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 시의 외연은 크게 ‘전통적 서정’과 ‘전위적 환상’의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전위적 환상’은 주로 2000년대 이후 등단한 신예 작가들의 작품들에서 찾아진다. 문학평론가 허혜정은 이에 대해 ‘대학이나 고급 학위 과정을 거치는 창작자들의 지식 습득 과정’을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한국평론가협회 엮음, 󰡔2000년대 한국의 젊은 비평󰡕,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18쪽). 한국 근대기의 시문학이 해외유학파들의 귀국과 서구 문예이론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우리 문단의 다양화를 초래한 점을 감안할 때, 제도교육과 시의 분화 양상에 대한 허혜정의 지적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시 본연의 미학이 외부로부터 촉발된 어떤 감흥을 바탕으로 내면의 느낌이나 사유를 펼쳐가는 것이고 보면, 전위적 환상시들 또한 그 출발은 ‘무엇으로부터 촉발된 감흥’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감흥의 근원을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이 미로같아서 전문적 비평가들조차 난감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연이 어떻든 간에 시라는 갈래가 지닌 고유한 특성은, 시인이 자신의 내면에 촉발된 그 감흥의 근원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하겠다. 일찍이 조지훈은 그 감흥의 근원을 ‘고전정신’에서 찾고자 했고, 서정주는 ‘동양정신’으로 표현했다. 1930년대 정지용이 그의 시론을 ‘동양의 성정론(性情論)’으로 끌어간 것이나, 1920년대 소월이 시를 일컬어 ‘시혼(詩魂)’의 변환이 만들어 내는 음영(陰影)이라 본 것도 결국 시인의 내부에 촉발된 그 ‘무엇’에 대한 헤아림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 근현대시의 맥락을 관통하는 어떤 ‘정신’, 또는 ‘혼’의 원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글쓴이는 그 원류의 한 줄기를 16, 7세기 조선의 시단에서 찾고자 한다. 그리고 16, 7세기 조선시단의 원류는 다시 더 거슬러 올라 중국의 고대시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이를 통해 수 세기를 이어 온 동양의 전통시론이 어떻게 21세기의 디지털매체 문학, 더 구체적으로는 ‘디카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문제제기 차원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2. 고전시론에서의 ‘비흥(比興)’론

한국의 전통시론은 중국의 고전시론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중국 고전시가의 전통적 표현 수법은 ‘부(賦), 비(比), 흥(興)’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주희(朱熹)는 “부란 말하고자 하는 사물을 자세히 부연하여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요, 비란 다른 사물을 가지고서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에 비유하는 것이며, 흥이란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함으로써 읊고자 하는 말을 유도해 내는 것이다”라고 풀어 쓰고 있다. 다시 말해, ‘부’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방식이라면 ‘비’와 ‘흥’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이다. 󰡔시경(詩經)󰡕은 이들 가운데 ‘비’와 ‘흥’을 강조하여 중국 고대시들의 빼어난 미학이 그것에서 비롯될 수 있도록 하였다. 시경에서 언급하는 ‘비흥’이란 ‘시인의 감정을 촉발시키는 외물(풍경, 형상)을 통해 감정이나 사상이 표현되고, 나아가 작가의 주관적 감정 사상에 상상이나 연상 작용을 거친 객관적 물상을 결합시켜 예술적 형상을 이루어내는 수법’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정경교융(情景交融)’이라 한다. 중국의 고전시론에서는 ‘비흥’에 대해 “말은 다함이 있되 뜻은 무궁한” 함축미를 지니게 하는 시가형상으로 풀어쓰고 있다. 청나라 문인 오교(吳喬)는 이에 대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만 그려내면 그것으로 다하지만, 여백의 미를 추구하면 그 뜻은 무궁해진다”라고 풀어 쓰고 있다.

‘흥’을 중시하는 중국 고전시론의 연원을 더 거슬러 오르면 송나라의 시론가였던 섭몽득(葉夢得, 1077~1148)에게로 이른다. 그는 시론서인 󰡔석림시화(石林詩話)󰡕에서 ‘촉물우흥(觸物寓興)’을 주장하였는데, 이때 우흥은 ‘흥을 담아낸다. 또는 흥에 의지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대상에서 느끼는 자연스런 감흥과 정취에 의탁한다는 말로서, ‘흥을 담아낸다’는 것에는 시 창작에 있어서의 시인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즉, 시인이 경물과의 접촉에서 순간적으로 촉발되는 자연스러운 감흥과 정취에 의지하게 되면 시어가 현실의 특정 내용을 지시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역시 송나라 시론가였던 엄우(嚴羽, 1180~1264) 또한 그의 시론집인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지식이나 이치와 구분되는 흥취로서의 시를 강조했다.

 


대저 시에는 별도의 제재가 있으니 책과는 관계가 없으며, 시에는 흥취가 있으니 이치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옛사람은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지 않은 이가 없다. 이치의 길에 빠져들지 않으며 말이라는 매체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므로 시는 성정(性情)을 읊는 것이다. -엄우, 󰡔창랑시화(滄浪詩話), 시변(詩辯)󰡕

 


“시는 성정(性情)을 읊는 것”이라는 말은 시적 정서의 표현이 이성적 사고나 논리적 판단과 연결되기보다는 즉각적인 감발(感發)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이처럼 중국 고전시론에서는 부, 비, 흥이 따로인 듯하지만 하나로 혼용되어야만 좋은 시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명나라 문인 사진(謝榛, 1495~1575)은 그의 유일한 비평서인 󰡔사명시화(四暝詩話)󰡕에서 “경(景)은 시의 매개이고, 정(情)은 시의 배아다. 이 둘이 합하여 시가 된다. 몇 마디 말로 만 가지 형상을 부려서 원기가 혼성(渾成)하니 그 넓음이 가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역시 명나라 시론가인 도목(都穆, 1458~1529)은 󰡔남호시화(南濠詩話)󰡕에서 “시를 지을 때 반드시 정이 경과 만나고, 경은 정과 합해져야만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또 청나라 왕부지(1619~1692)는 󰡔석당영일서론(夕堂永日緖論)󰡕에서 “정과 경은 이름이 둘이나 실제로는 나눌 수 없다. 빼어난 시는 정 가운데 경이 있고, 경 가운데 정이 있다.”라고 말했다.

조선 중기 이후의 문단은 이러한 중국의 고전시론을 충실히 수용하였는데, 그 가운데 특히 ‘흥’의 시론은 조선문단의 전통적 주제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조선문단에 ‘당시(唐詩)’ 담론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도 이 ‘흥’의 수용에 따른 것이었다. 송시(宋詩)가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경향을 띠는 것에 비해 당시는 서정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조선문단은 ‘서정’, 곧 발흥(發興)과 그것의 갈무리 과정을 시의 기본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사물로부터 촉발된 흥취에 관심을 두는 ‘인물기흥(因物起興)’은 조선중기 한시 창작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시론은 17세기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여전히 시어가 지닌 함축성과 여운은 시 창작의 기본 원리로 기능했다. 즉, 간결한 형식 안에 함축적 의미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이 시기 한시(漢詩) 창작의 기준이 된 것이다.

16, 7세기 조선에 중국의 고전시론을 수용한 시론가들로는 허균, 이수광, 신흠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들의 시론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흥’의 시론은 외물의 묘사와 시적 자아의 정취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 발생하는 ‘흥취’, 또는 ‘의홍’을 시에 담아내는 것이다. 이때의 ‘흥’은 시적 자아와 외물의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촉발되는 심미적 정취이기 때문에 이는 고정적이기보다는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고, 그만큼 의미의 폭이 넓어진다. 이는 시적 정서가 이성적, 논리적 사고보다는 즉각적인 감발(感發)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흥취는 그 자체로 살아 꿈틀대는 것이므로 그 어떠한 고정된 시어로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다만, 작가가 느낀 그 감흥을 독자에게로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선 그러한 미적 경험을 매개할 수 있는 마땅한 시어를 고르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시어로 의미를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간결한 시어를 통한 정서적 매개에 목적을 둔다. 그렇게 매개된 정서는 표현된 시어를 바탕으로 무한한 감흥의 세계로 놓여난다.

 


3. ‘날시(raw poem)’와 ‘감흥’, 그리고 디카시

‘디카시(dica-poem)’는 2004년 이상옥 시인(창신대 문예창작과 교수)에 의해서 처음 세상에 선을 보였다. 디카시는 사물에 고유하게 내재된 시적 의미를 이미지로 포착해 그것에서 촉발된 감흥을 문자로 재현하는 것이다. 이상옥 시인은 사물에 고유하게 내재된 시적 의미를 ‘날시(row poem)’라 이름 붙이고, 디카시는 이러한 날시를 포착해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언어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그 미학적 성취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디카시에서의 시인은 사물(혹은 자연)에 내재한 시적 감흥이 인간의 감흥으로 확장되게 하기 위한 매개적 존재일 뿐이라는 주장이다(이상옥, 󰡔앙코르 디카시󰡕. 국학자료원, 2010 참조). 이러한 ‘날시론’은 흡사 오규원의 ‘날이미지 시론’을 떠올리게 한다. 오규원은 은유적 언어체계로 이루어지는 시를 인간 중심적 사고의 결과물이라 비판하면서 ‘환유적 언어체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시란 대상이 되는 불투명한 관념이나 심상을 구체적인 사물로 치환”시키거나 또는 “의물화, 의인화 시켜 그 추상성을 구상성으로 바꾸어놓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식의 ‘인간 중심적 사고’가 저지르는 횡포라고까지 표현했다(오규원, 󰡔날이미지와 시󰡕, 문학과지성사, 2005 참조). 그래서 이러한 사고는 “세계를 함부로 구속하거나 왜곡하거나 파편화”하기 마련이라는 것이 오규원의 주장이다. 즉 그의 날이미지 시론은, 외부 세계를 인간의 사유와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을 환유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시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그가 제기하는 시어는 ‘살아 있는 언어’, 혹은 ‘굳어 있지 않은 의미로서의 이미지’로 풀이된다. 때문에 날이미지 시론에서의 시인은 세상을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어를 매개로 삼아 우리를 인식 이전의 존재에게로 이끄는 사람이다. 이상옥 또한 그의 디카시론에서 이러한 시인의 기능을 ‘에이전트(견자, 牽者)’로 설명한다. 자연 사물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시적 의미를 시인은 단지 발견할 뿐이고 그 발견을 언어로 옮겨 독자층과 공감하게 하는 게 시인의 역할이라는 것이 이상옥이 주장하는 디카시론이다.

오규원과 이상옥의 주장은 얼핏 시인의 역할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닮아 있는 것 같지만 최종적으로 표현되는 시적 형상을 놓고 보면 둘 사이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오규원의 날이미지 시론이 강조하는 바는 철저히 객관화된 외물 그 자체로서의 존재 묘사이다. 따라서 그 대상에 대한 시인의 관념과 상상이 개입되는 걸 철저하게 배제하고 실제로 감각할 수 있는 ‘사실적 존재’만으로 시를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날이미지 시론에서는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디카시는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사물 자체를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사진)로 제시한다. 따라서 이미지에 대한 보정 작업(포토샵)이나 의도적이고 과도한 연출은 디카시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시인의 주관적 의도에 의해 객관적 대상 자체가 왜곡되거나 변형되는 것이기 때문에 ‘날이미지’로서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규원이 제기한 날이미지는 디카시론에서는 이미지로 대체되는 셈이다.

하지만 디카시는 이러한 객관 사물에서 촉발되는 감흥을 무시하지 않는다. 대개 우리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자연 사물에는 이미 그 자체에 인간의 감흥을 촉발시키는 근원적 힘이 있기 때문에 저마다 카메라나 휴대폰으로 즉석에서 그 대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포착된 이미지에서 촉발되는 감흥을 시적 언어로 재현해 이미지와의 의미 결합을 추구하는 것이 디카시이다. 이런 점에서 디카시는 오규원이 강조한 날이미지와 그것에서 비롯된 감흥의 결합체로 이해되어야 할 일이다. 이는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정경교융’의 새로운 시도라 할 만하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함께 일상의 여유가 사람살이의 중요한 방식이 된 이 시대에 디카시가 주목받는 것도 이런 갈래의 근원적 힘 때문일 것이다. 최첨단 기계 문명의 시대에 인간의 감성을 활용하는 광고가 전체 광고의 절반을 넘는다거나, 인간의 감성을 활용한 마케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통계는 ‘감흥’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현대시는 이러한 근원적인 감흥에서 많이 비껴나 있다. 표현된 기호로는 도저히 그 감흥의 촉발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이 말은 시어의 여운이 커서 해석의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이 아니라, 도저히 그 의미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시어가 시인과 대중을 매개하지 못함으로 해서 시는 점점 생활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래서 전위적 환상시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전문 비평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 비평가들은 고급 학위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친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그들이 써내는 비평들은 때때로 작품을 이해하는 일보다 더 어려울 때가 많다. 결국, 난해한 상상력의 시들을 현학적인 비평으로 풀어내야만 대접받는 일련의 문단 풍토는, 결국 ‘그들만의 문단’을 만들고 만 셈이다.

독자는 어디 있는가?

여전히 시를 갈망하고, 여전히 전통적 정서인 감흥을 좇는 시무리들은 마치 ‘마이너’들처럼 변방으로 분류되어 또 다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예전에, 어느 일간지 문화부 기자가 자신의 수첩에 기록된 급수별 문예지 목록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몇 쪽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그 엄청난 수의 문예지들은 지금이야말로 한국문학의 번성기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문학이 죽은 시대?’ ‘문학의 위기?’ 반성없이 그 말을 되뇌어왔던 시간들을 반성해야 할 때다. 문학은 죽은 것이 아니라 계층화 되었을 뿐이다. 자본이 계층을 결정짓는 이 못된 시대를 문학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 서정이든, 전위적 환상이든, 혹은 디카시나 멀티포엠처럼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시 양식이든, ‘시’라고 하는 고유한 갈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술적 성취들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할 때다. 그리하여 계층화 된 시의 현재를 극복하고 시가 미분화 될 수 있는 미래를 지향해 가야 할 때가 지금이다. 이런 점에서 디카시 운동은, 21세기 문학사에 있어서 미래지향적 실천 행위로서의 뚜렷한 의미점 하나를 찍게 될 것이다.

 

============================<시와 경계>(201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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