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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예이론

<현대사회와 매스커뮤니케이션>(한국언론정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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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민기 댓글 0건 조회 615회 작성일 12-05-2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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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엮음,

<현대사회와 매스커뮤니케이션>

(한울아카데미, 2006 개정판) 

   이 책은 미국의 학문체계를 주류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였던 한국사회의 학문적 편향성을 극복하자는 뜻으로, 1988년 결성된 '한국사회언론연구회'(현, 한국언론정보학회)가 그 대안으로 연구한 결과물들을 한데 엮은 책이다. 초판은 1990년 8월에 발간되었는데, 이후 세 번의 개정을 거쳐 2006년, 전면개정판으로 다시 출간했다.
  제1부는 <미디어의 이해>로 '커뮤니케이션학'의 전반적 양상을 다루고, '매스미디어의 역사'와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기술과 사회 변화'를 살폈다.
  제2부는 <미디어와 사회>로, '미디어와 권력', 그리고 '미디어 산업', '미디어와 법'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3부는 <시민사회와 미디어>로, '미디어와 시민운동'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제4부는 <미디어와 문화>로 '디지털 시대의 문화적 풍경'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미디어 기능'이 눈길을 끈다. 여기에 '미디어가 어떻게 소수자 문화를 담아내는가'와 '미디어와 여성'의 관계에 시선을 부렸다.
  아래 이어지는 글들에서 1, 2, 3항은 이 책의 본문들 가운데 '디지털문예이론'의 바탕을 다지는 데 쓰임이 있다고 판단한 내용들을 요약, 정리한 것들이다. 이에 이어 4항은, 이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디카시'가 디지털 문화 환경 속에 어떤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디카시의 미래>

 

1. 미디어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미디어 기술의 진화사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생각과 감정 또는 욕구를 표현하거나 전달하기 위해 그때그때 효율적인 매개수단을 만들어왔다. 고대의 그림문양에서부터 최근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그 매개수단들은 다를지라도 그것을 통한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지금껏 가장 오래 미디어의 절대적 지위를 누려왔던 것은 인쇄매체였고, 그 가운데 신문이 지닌 지위와 정보 전파력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서구사회에서 신문은 중세 후기부터 출현하여 근대사회의 개막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상업 도시를 중심으로 발간되던 서한신문(특정 개인에게 다양한 뉴스를 전달하는 편지 형식의 매체)과 필사신문들은 17세기 근대 인쇄술로 제작되면서부터 정기적 형태의 신문으로 발전하였다. 근대신문은 상공업의 발달, 교통과 무역의 발전,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들과 같은 근대사상의 대두, 문자와 교육의 보급 덕택으로 빠르게 그 기반을 넓혀 갔다. 이러한 급격한 사회 변동 과정에서 신문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효율적 소통 수단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정보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에 맞물려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신문은 상업적 대중화의 산물로 전환되었다.

   이후,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같은 전파매체의 등장은 사람들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전파매체는 인쇄매체와 달리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문자해독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CNN을 창설했던 테드 터너(T. Turner)는 1980년에 “신문은 새로운 기능을 가진 첨단 미디어의 출현 때문에 10년 이내에 소멸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예언대로 신문이 아직 소멸한 것은 아니지만, 1980년대 이후의 컴퓨터와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분명 신문의 전통적 지위를 뒤흔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에 최근 들어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통신 수단의 출현이나,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새로운 소통 방법들의 출현은 정보의 다양성, 전문성, 선택성을 확대해 나가고 있고, 실시간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쌍방향적 정보 유통의 실현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2. 정보사회, 또는 네트워크 사회
  1980년대에 들어 미래사회를 ‘정보사회’로 이름 붙인 뒤, 그 근거를 컴퓨터와 통신 기술 및 양자의 결합에 의한 뉴미디어 기술 발전에서 찾는 관점들이 활발하게 제시되었는데, 그 대략적인 논지들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1980,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 정보사회’

       1980, 시몽 노라&알랭 밍크, ‘정보화 사회’

       1981, 제임스 마틴, ‘텔레마틱 사회’, ‘유선망 사회’

       1982, 윌슨 디저드, ‘정보시대의 도래’

       1982, 프레더린 윌리엄스, ‘커뮤니케이션 혁명’, ‘전자 르네상스의 출현’

       1983, 마스다 슈우지, ‘정보화 사회’

       1984, 존나이스빗, ‘메가트랜드’

       1987, 톰 포레스트, ‘하이테크 사회’


  이들이 이름 붙인 ‘미래사회’는 모두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미래 정보사회의 기술적 기초이자 그 기본 동력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들은 그 이후 줄곧 인류 사회의 삶에 현실로 실현되었다. 이제 정보통신 기술은 유․무선 미디어의 통합과 각종 단말기의 융합에 힘입어, ‘모바일 사회’ 또는 ‘유비쿼터스* 사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워드 라인골드는 이런 미디어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가상공간이 현실세계에서 점차 상실되어 가는 ‘공동체적 연대’를 회복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친밀성을 바탕으로 한 농경사회적 공동체성은 물론이고, 과거 산업화 때문에 훼손된 인간적 가치와 이념들을 회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전개한다.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온라인 공동체는 산업사회의 강력한 국가적 통제에서 해방됨으로써 전 지구적인 시민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기도 한다.

  스티븐 존스는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MC :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 이러한 가상공동체를 ‘사이버 사회(cybersociety)’라 이름지었다. 존스는 CMC에 의해 형성되는 새로운 전자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발생하며, CMC는 시간과 공간의 확장 및 압축을 통해 그러한 사회적 관계를 계속 새롭게 구성, 재구성해 나가고 있다고 보았다.

  마누엘 카스텔은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사회 형태를 ‘네트워크 사회’라 이름 지었다. 카스텔에 의하면, 네트워크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 속에 존재해 온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 그것은 정보 네트워크가 실현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

  정보화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로 이름한 학자 가운데 또 한 사람으로 ‘반 다이크(Jan van Dijk)’를 들 수 있다. 그는 네트워크 사회에 대해, ‘사회적 네트워크와 미디어 네트워크가 조직의 주된 양식과 가장 중요한 구조들을 형성하는 사회’라고 규정한다. 반 다이크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을 시간과 공간의 확대와 축소, 즉 규모의 확장과 축소로 보는데, 이들 양자는 서로 강력히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서 현대의 사회적 네크워크와 미디어 네트워크들이 바로 이러한 상호 연관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3. 수용자로서의 시민
  정보사회에서 미디어 수용자란, 미디어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의 역할까지도 감당할 때가 있다. 과거의 수용자는 수동적이었지만, 정보사회에서의 정보수용자들은 하워드 라인골드의 표현대로라면 ‘똑똑한 군중(smart mobs)’들이다. 예전 같으면 TV드라마의 스토리 전개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수용자들은, 이제 저마다의 미디어 기기들을 이용해 스토리 전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리하여 방송사에서 이미 설정된 스토리 라인을 의도대로 변경시키기까지 한다. 최근 들어서는 시청자들의 각기 다른 반응을 고려해 드라마의 결말부분을 미리 여러 개 찍어놓기도 한다. 앨빈 토플러는 이러한 미디어 수용자들의 행태에 착안해 정보사회의 구성원들을 ‘프로슈머(producer+consumer)’*라 이름 붙였다.

 

4. 네트워크 시대와 디카시의 기능

1) 시의 위기, 그 대안으로서의 ‘디카시’

  근대 산업혁명이 대량생산, 대량분배를 통해 원전이 지닌 아우라를 붕괴시켜버린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를 대중 중심으로 이해하면 그만큼 문화의 대중적 확산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산업혁명은 분명 높이 평가받을 만한 사건이다. 정보사회는 이에 더 나아가 대중들이 원전을 모방하거나, 그에 변형을 가해 새로운 창작물(패러디)로 재생산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따라서 산업혁명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가르는 인류문명사의 한 전환점이었다면 정보화혁명은 모든 문화의 통합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문학은 예전의 그 ‘고귀한 자리’를 고집스레 지키고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인간의 삶을 바탕에 둔 문학이 정작 인간의 생활과 동떨어진 자리에서 쓰이고 읽힌다면, 이는 얼마나 모순적인가. 문학이 좀 더 구체성을 띠고, 좀 더 생활적인 면면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디카시는 시창작에 필요한 전통적 시작법(詩作法)이나 시론을 필요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디카시는 사물에 내재한 고유한 의미(날시, raw poem)들을 인간 본성으로 즉시 ‘감(感)’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의 언어적 조합은 이차적일 따름이다. 따라서 전통적 시작법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날시’를 포착하는 ‘감(感)’이 발달되어 있다면, 충분히 훌륭한 시인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인간이 지닌 보편적 감성으로 포착한 ‘날시’는, 특별한 시론이나 비평적 안내 없이도 독자들에게 온전히 그 의미 그대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사념적이고 기호적인 시들보다 디카시가 훨씬 더 생활 가까이에서 쓰이고 읽힐 수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2) 디카시와 소셜 네트워크
  미디어 기기들의 발달과 정보화 환경은 산업혁명 이후 줄곧 문제로 제기되어 온 ‘파편화 된 인간관계’의 대안으로까지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에서는 발달된 미디어 기기들을 통해 오갈 수 있는 콘텐츠들의 개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페이스북’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관계’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본보기이다. 서로의 자그마한 관심사들을 매개로 어떻게든 링크되고자 하는 갈망은 경쟁으로만 치달았던 현대인들의 비극적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 보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페이스북 이전에 이러한 ‘관계맺기’의 폭발적 경험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목격된 바 있다. 1999년에 시작돼 2000년에 급물살처럼 번졌던 ‘아이러브 스쿨’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아이콘이었던 ‘학맥’을 이용해 끊어졌던 학연들을 다시 이어주었던 아이러브 스쿨은 2000년대 중반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셜 네트워크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러브 스쿨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소셜 네트워크 프로그램으로 ‘싸이월드’를 들 수 있다. 아이러브 스쿨이 ‘학맥’이라는 하나의 교집합을 링크 요건으로 삼았다면, 싸이월드는 그보다 좀 더 다양한 링크 요건들을 내걸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개인과 개인의 친분 쌓기를 유도하기 위해 ‘도토리’라는 동심적 환상을 이용한 것이다. 여기에 ‘일촌맺기’라는 한국 고유의 ‘친족관계’를 활용해 사이버 공간에서의 개인과 개인을 혈족관계로까지 끈끈하게 확대시켰다. 이렇게 혈족관계로까지 이어진 사용자들은 서로의 은밀한 정보들을 남몰래 공유해가는 ‘그들만의 세상’을 가상공간에 실현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디카시’는 소셜 네트워크 콘텐츠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 그렇다’이다. 앞서 예로 든 두 경우들은 한국 고유의 정서인 ‘학맥’과 ‘혈연’ 관계에 바탕을 둔 것이다. 디카시는 앞서 말한 바대로 ‘인간 고유의 보편적 정서’를 바탕에 둔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동양, 더 나아가 전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에 닿을 수 있다. 디카시 창작의 근원은 곧 ‘날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지로 제시되는 ‘날시’에 2차적 기호인 각국의 언어가 적절히 링크된다면, 한 나라의 언어가 다른 나라의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원뜻이 뭉개져버리는 참사(?)를 피할 수 있다.

   오래지 않아, ‘디카시사화집’이 회원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묶여 나올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어와 함께 중국어와 영어가 한데 펼쳐질 것이다. 디카시사화집은 순수 디카시마니아들(굳이 문단 기준으로 표현하자면 비전문적 시인)의 첫 결과물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지만, 이에 더 나아가 ‘소셜 네트워크 콘텐츠’로서의 가늠쇠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다리는 맘이 더욱 애틋하다. 참여하는 분들 모두 전 지구적 네트워크 콘텐츠의 개발자라는 사명감으로 한 획 한 획 시심을 발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용어풀이>==========================================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 미국 제록스사 팰러앨토 연구소의 마크 와이저가 1991년,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 연구’를 통해 주창한 개념이다. 모든 객체를 컴퓨터화하고 동시에 컴퓨터화된 모든 객체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즉, “무수히 많은 마이크로 컴퓨터(칩)들이 가전제품, 건물, 도로, 의복과 같은 물건이나 심지어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상 사물과 환경에 심어져서, 이들이 네트워크로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신개념의 컴퓨팅 환경”을 뜻한다.

*프로슈머(prosumer) :  prosumer(프로슈머)는 ‘producer(생산자)’ 또는 ‘professional(전문가)’과 ‘consumer(소비자)’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프로슈머의 개념은 1972년 마셜 맥루언과 베링턴 네빗이 《현대를 이해한다》(Take Today)에서 "전기 기술의 발달로 소비자가 생산자가 될 수 있다"라는 말로 처음 등장했으나, "프로슈머"라는 단어는 1980년 앨빈 토플러가 《제3물결》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우리말에서는 '생비자(생산자 + 소비자)'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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