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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디카시 (반년간 디카시 통권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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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영 댓글 0건 조회 2,291회 작성일 15-05-2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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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 정한용

 

 

벗어놓았군요 당신 가터벨트

봄 여름 뜨겁게 섞인 몸길로 천 개의 달이 지나가고

갈 겨울 북벽에 스며 하나 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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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 최준

 

 

꽃도 꽃이었다 한때

글썽이고 일렁이던 그대와 나, 촛불이었다

사위는 순간 서로가 지워졌다 자취 없이 사라져 갔다

타오르기는 했던가 만난 적 있었던가

오늘도 그 길 반추하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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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 / 송찬호

 

 

지난여름, 앰블런스에 실려 간 옆집 노인은 끝내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노인이 심은 호박도 넓게 넝쿨을 뻗지 못하고 시들었다

다만, 멀리서 소식 없는 한 점 혈육 같은,

담장에 매달린 호박 한 덩이만 애호박에서 늙은 호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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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 / 복효근

 

 

동아줄로 꼬인 번뇌의 길

일보일배 온몸으로 걷는다

다시는 못 올 길

성지가 아닌 곳은 없다

 

 

 

 

 

절명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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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명

  - 詩人  / 박완호

 

 

감전된 마음 하나를 만났다.

거미줄을 붙들고 가까스로 매달린

금 간 심장이

죽을힘을 다해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마지막 숨빛이 단발마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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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 김혜영

 

 

인큐베이터 안에서

넌 젖병을 물지 않더구나

 

아가, 네 입안에

밥알이 들어갈 때

폭죽이 터지듯 벚꽃이 웃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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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들 / 문성해

 

 

우묵함은 품는다는 것

사람이 매일 아침 오목한 손바닥 안에

세숫물을 담아내듯

저 독들도 곧 무언가를 품어

우려내거나 절여내거나 고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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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 우대식

 

 

노을에 앉아

나를 꺼내 읽는다

그 어디에도 사랑이라는 문자는 없다

꼭 걸어서 당도하라는 당신의 부탁만이

활판活版의 문자로 새겨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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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 김이듬

 

 

벽을 보여주세요

절벽을 세워 날 좀 막아주세요

달리다 다쳐 주저앉아버리자

보이는 물과 벽, 나의 몸속에서

날 에워싸고 잡아준 붉은 벽 한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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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 고영민

 

 

 

너도 핏줄이 있느냐

핏줄이 당기느냐

 

일구월심 번져가는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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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 조용숙

 

 

 

거미야!

너만 몰랐구나

 

네가 밤새워 짠 그물에 걸려 허부적대는 이가

바로 너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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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병 / 조재형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때

나는 한낱 칼집에 불과하다

사랑을 열어 그리움으로 채울 때

비로소 나는 꽃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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