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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파(Vorticism)_에즈러 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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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ake5 댓글 0건 조회 2,067회 작성일 12-06-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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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파(Vorticism)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 전 홍실 역

   ......위 생략

누구나 장식에는 넌더리가 나기 마련이다. 그것들은 모두가 하나의 속임수이고, 누구든 명석한 사람은 그것들을 알아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발굴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인식의 미를 이해하고 있다. 한 중국인은 오래 전에 사람이 말해야 할 것을 열 두 줄로 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입 다물고 있는 게 낫다고 말하였다. 일본인들은 하이쿠(俳句)라는 아주 짧은 형식을 발전시켰다.


 

낙화 휘날려 가지로 돌아가네:

한 마리 나비.

落花枝に歸ると見れば胡蝶かな

-荒木田守武(あらきだもりたけ, 1473~1549)


 

이것은 잘 알려진 「하이쿠」의 내용이다. 빅토 플라아는 한때 일본 해군장교와 함께 눈 위를 거닐고 있을 때, 그들은 고양이가 길을 가로질러 간 곳에 이르렀고, 그리고 그 장교는 멈추시오, 나는 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나에게 전했다. 그 시는 대략 다음과 같다.


 

눈 위에 고양이 발자국들;

자두꽃들(같구나).


 

‘같구나’ 라는 말들은 원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분명하게 하기 위해 나는 그 말들을 첨가한다. ‘하나의 이미지로 된 시’는 중첩의 형식이다. 즉, 그것은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 위에 포개진 것이다. 나는 지하철 정서에 의해 빠졌던 궁지로부터 빠져나오는데 그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30행의 시를 썼으나, 그것이 ‘제2강도’의 작품으로 불리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파기했다. 6개월 뒤에 그 길이의 반이 되는 시를 썼고, 일 년 뒤에 다음의 「하이쿠」 같은 문장을 만들었다.


 

군종 속에 홀연히 나타난 이 얼굴들:

비에 젖은, 검은 가지 위의 꽃잎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In a Station of the Metro


 

이 시에 의해 사람이 어떤 사고의 맥락 속으로 떠돌아 들어가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이런 종류의 시에서는 누구나 외부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 변형되거나 돌진해 들어가는 그 정확한 순간을 기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특수한 종류의 의식은 인상주의 예술과는 제휴된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이 주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상주의 예술의 논리적 귀결은 영화이다. 인상주의자의 정신 상태는 영사기와 같은 것으로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또는 그것을 다른 식으로 말한다면, 영사기는 많은 인상주의 예술의 필요성을 제거해 준다.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두 가지 상반된 방법들이 있다. 우선 당신은 그를 지각이 지향하는 존재로, 상황의 노리개로, 인상들을 「받아들이는」 형성력이 있는 물질로 생각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당신은 그를 유동적인 힘을 환경에 대항해 나가게 하거나, 또는 단순히 반사하고 관찰하는 대신에 「구상하는」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어느 한 방법이 다른 한 방법보다 낫다고 주장할 수 없으며, 기질의 다양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그 두 진영은 언제나 존재한다. 1880년대에는 인상주의자들에 상반된 상징주의자들이 있었다. 이제 당신들은 소용돌이파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대체로 말해서 한쪽 진영에 모인 표현주의, 신입체파, 그리고 이미지즘과 다른 한쪽 진영에는 있는 미래파이다. 미래파는 인상주의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것은 예술운동인 일종의 가속화된 인상주의이다. 그것은 집중적인 소용돌이파와 대조되는 것으로 확산, 또는 표면예술이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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